[CoFF-log] 알라딘의 지니에게도 있었던 것 (21년 1월 22일)

2021. 1. 25. 14:22Story

어떤 소원이든 모두 이루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영화 <알라딘> 속 램프의 요정 지니. 그러나 그에게도 몇 가지 규정은 있었다. 첫째, 소원은 단 세 가지만 가능하다는 것 (You can't wish for more wishes). 둘째, 누군가를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 (I can't make anybody love anybody). 셋째,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 역시 안 된다는 것(or bring anybody back from the dead).

‘규정 없이, 그저 무한정으로 소원을 들어줬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지만, 사실 규정이 없었더라면 <알라딘>의 이야기는 지금처럼 흘러가기는 어려웠으리라. 어쩌면 알라딘은 끝내 자스민의 진정한 마음을 얻지 못하고, 꾸며진 삶을 사는 것으로 마무리 했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영화 속에서 약속은, 메시지의 흐트러짐 없이 스토리가 잘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된다. 알라딘이 마법의 힘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스민에게 진솔한 모습으로 다가갈 구실을 만들어 준 것처럼. 잘 만들어진 약속이, 잘 지켜졌을 때에는 더할 나위 없는 해피 엔딩을 만들어내고는 한다.

브랜드 컨셉영화제 역시 마찬가지다. 함께 지켜야할 약속이 필요하다. 참가하는 사람들이 (또는 멘토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주는 가이드라인이자, 브랜드 컨셉영화제의 특성을 담은 레귤레이션(Regulation). 이번 회의에서는 멘토에 대한, 그리고 참가자에 대한 레귤레이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에는 다섯 가지의 감정이 나온다. 기쁨이, 슬픔이, 까칠이, 소심이, 버럭이. 영화 초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단연 기쁨이다. 이사하고 우울해하는 라일리를 위해 기쁨이는 ‘어떻게 하면 라일리의 삶에 기쁨만 가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슬픔의 감정을 만드려는 '슬픔이'의 행동은 있는 힘껏, 저지하려 한다.

그러나 영화 중반이 지나고 후반에 들어가며, 기쁨이는 ‘슬픔’을 인정하게 된다. 사실, 슬픔 역시 라일리의 소중한 감정이기에. 기쁨이와 슬픔이가 서로를 이해하고 난 뒤의 라일리는 훨씬 더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 서로다른 감정이 만나 오히려 다채롭고 풍성한 감정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영화제를 위한 레귤레이션 역시 그렇다. 단순히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참가자의 활발한 창작활동을 독려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지, 멘토들에게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또 원활한 영화제 운영을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 모든 내용을 생각하고 이해했을 때, 보다 탁월한 규정이 나올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내부적으로 꾸준한 회의는 물론, 멘토들과 서울예술대학교에 끊임없이 자문을 구하고 있다.

이렇게 완성된 약속들을 서로가 잘 지켜갔을 때, 영화제가 훌륭한 행사로 마무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지니가 말했던 세 가지 약속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자. 이는 알라딘의 소원을 제한하기 위함이 아니다. 알라딘이 스스로의 내면을 발견하고 진실한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렇다면, 브랜드 컨셉영화제에서 더 탁월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또 영화제가 한 편의 스토리처럼 자연스레 진행되기 위해서는 어떤 약속들이 필요할까. 아마 단숨에 완성되기는 힘들 것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이어지는 회의 속에서 길을 찾아 나가게 되리라.

글. 최다예 (브랜드 컨셉영화제 에디터)